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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훈을 좋아하는 이유, 바다의 기별을 읽고...

kiku929 2010. 1. 23. 09:33

 

 

           

              

                                                                 이병률이 찍은 김훈

 

 

 

 

내가 김훈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그가 지성과 감성의 양단을 균형적으로 갖추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기자 출신답게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그 영혼의 바탕엔 인간적인 감성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이 두 가지가 서로를 견제해주기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적절한 수위의 수사를 구사함으로써 품격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얼마전에 나온 그의 에세이 '바다의 기별' 첫 편에 나오는 '바다의 기별'편을 읽으면

우리 글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이 에세이에는 다른 작품에 비해 시종일관 감성적인 흐름으로 이어가고 있다.

삶에 대한 허무, 체념, 관망 그러면서 거기에 어떤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 길위를 담담히 걷고 있는 그의 아름다운 감성들이 글의 곳곳에 배어나온다.

한편의 시를 보는 것처럼, 혹은 꿈길을 걷는 것처럼 몽환적으로, 그러면서도 무턱대고 감성의 길로만

독자를 이끌고가는 것이 아니어서 넘치는 바가 없다.

내가 모든 예술에서 가장 좋아하는 哀而不悲... 그는 그 경계에서 머문다.

 

그의 소설을 보면-칼의 노래나 남한산성-글들이 매우 담백하다는 걸 본다.

주관적인 감정은 최대한 배제되고 삼자적 관점으로만 사실을 나열하는 듯해 무미하기조차 하다.

풍부한 감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글의 수사를 절제하는 이유는 그가 '난중일기'에 매료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꽃은 피었다"라고 쓰지 않고 "꽃이 피었다"라고 쓰는 오직 사실에만 충실한 난중일기.

그는 젊은 시설 그런 명석성의 글에 감명받았다고 적고 있다.

이 '난중일기'가 그의 글쓰는 스타일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난 모든 글이 꼭 진지하고 깊이가 있고 무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기의 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책을 읽노라면 그가 얼마나 언어의 진정성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언어를 사랑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난 그의 글을 향한 열린 마음과 열정, 그리고 인간애에 끌린다.

기분 좋은 끌림이다. ^^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세계에서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서 쓴다는 것입니다.

저의 소설은 대부분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내 소설에는 종교나 내세나 구원이나 피안이나 이런 것들이 나오지 않고,
오직 이 해탈하지 못한 중생들만 나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득도하지 못한 중생만 저의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소설로 쓸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좁은 것이죠.
득도하지 못한 중생 얘기만 쓰는 아주 협소한 영역을 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까, 인간의 안쪽에서만, 인간의 언어만을 붙들고 살아야 되니까,

그런 협소한 자리의 부자유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안에서만 한 줄 한 줄의 글을 쓰다가 때가 되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다의 기별 中, '말과 사물' p167

 

 

            2009. 5.17. 대천에서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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