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서랍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고마운 마음을 담아-

kiku929 2010. 2. 15. 00:59

 

 

 

 

 

친구에게...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 되었어.^^

 

어젯밤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새벽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캠퍼스안을 산책했어.

대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하늘엔 아직

새벽달이 떠있는 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상념에 젖었단다.

 

백일홍 나무가 참 이쁘다는 생각,

이제 백일홍 꽃이 피면 내가 언젠가 남해에 여행갔던 일을

떠올리게 될거란 생각,

그리고 너랑 근택이랑 동일이랑 어릴 적 여름날 우리집에 매일같이

놀러왔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학교운동장 돌 계단에 한참이나 앉아있었어.

 

내 나이 마흔 다섯...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중에 다시 돌아가고픈 시간이 있다면

아마도 그때가 아닌가 싶어.

엄마 아빠가 내 곁에 있었고, 아직 꿈이 있었고,

내성적이고 친구도 별로 없이 외롭게 자란 나에게 친구라고 찾아와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다가곤 하던 너희들이 있던 그 시절...

참 싱그럽고 푸르른 나날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나에겐 언제나 그리운 고향같은 시간이란다...

 

그런 우리가 이제 마흔의 중반을 넘었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단발머리였던 그때의 내가 마흔다섯이 되어 아이 셋을 데리고 남해까지 널 찾아갈거라곤

어떻게 생각했겠니...

 

언니에게 전화가 와서 내가 남해에 아이들과 함께 왔다고 하니까 놀라더라.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신세라는 걸 뻔히 알면서 기대본 적 없던 내가

아이들 데리고 놀러간다며 친구에게 숙식을 부탁하는 내 자신이 참 염치없으면서도

이상한 건 그렇게 미안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냥 너에겐 농담처럼 멸치좀 보내달라는 말도 쉽게 하게 되고

장부에 싸인만 하고 먹는 일도 그리 어렵지가 않네...ㅎㅎ

너무 뻔뻔한가?

사람은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되는 건데 내가 너에게 줄 것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침 운동장을 보며 그런 생각했어.

고맙다구...

네가 나에게 뭔가를 베풀만큼의 어른이 되어줘서 정말 감사하다구...

 

내가 행복했던 건

네가 날 위해 마음을 써주었던 세세한 일 때문이 아니라

내가 편하게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었어.

그래, 그런 친구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

엄마에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거,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온 것만 같아

은근히 기분도 좋구...

 

말이 너무 길지?^^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내 마음 알아줄텐데...

고마워.

덕분에 좋은 추억 가슴에 심어놓을 수 있게 되었어.

 

남해...

참 아름답더라.

태어나 처음 가본 곳...

 

잘 지내구,

아프지 말구....

 

 

2008.7.25  寧

 

 

 

 

 

지금 남해 어느 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고등학교 선생님 하는 아내와

딸 아들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친구이다.

집안끼리 아는 사이여서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곤 했던 친구...

남해여행은 꿈도 못꾸었을 텐데 이 친구의 초대로 아이들과 2박 3일로 다녀오게 되었다.

 

일년 한 두번의 연락이 고작이면서도 언제든 목소리 들으면 반갑고 즐겁다.

지금도 형님이랑 놀러오라고 말해주는 정많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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