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553

정류장에서 / 문태준

정류장에서 문태준 언젠가 내가 이 자리에 두고 간 정류장 둥근 빗방울 속에 그득 괴어 있던 정류장 꽃피고 잎 지고 이틀 사흘 여름 겨울 내려서던 정류장 먼 데 가는 구름더미와 눈보라와 안개의 정류장 홀어머니 머리에 이고 있던 정류장 막버스가 통째로 싣고 간 정류장 - 문태준 산문집 에 수록된 시 * 정류장이라는 장소는 문태준 시인의 시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 시인에게는 깊이 각인된 장소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참 쉽다. 그런데 저런 시를 막상 쓰려면 정말 쓰기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익숙한 시어지만 그 언어의 조합이 결코 익숙하지 않다. 뻔하지도 않다. 그러나 읽고나면 마음 한 쪽 자리에 눈물이 고이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읽을수록 좋은 시 자꾸 읽게 되는 시 정류장에 서있게 되면 ..

!시 2022.12.25

무디어지기

다치고나서 의도치 않게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70일이 지난 지금은 통증도 어느정도 가라앉고 통깁스에서 보조기로 바꾼 탓에 쉴 때는 마음대로 벗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비로소 쉰다는 기분이 이제야 든다. (아직도 다리를 내리면 순식간에 붓고 검붉은 색으로 변하면서 찌릿찌릿하다.) 몸이 하루하루 굳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침대에서 운동을 한다고 해도 걷지를 못하니 한쪽다리는 이미 근육이 다 빠져버리고 전체적으로 뻣뻣하다. 한쪽다리로 겨우 서서 잠깜잠깐 씻고 설거지하고, 10분을 일하면 30분을 거상하며 누워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지옥에서 막 탈출하여 나온 사람처럼 평온하고 행복하다. 책을 읽다가 '무디다'는 단어에서 멈추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마음이 ..

바람마음 2022.12.23

해탈이란

"해탈이란 자신을 얽어매는 관념의 족쇄에서 벗어남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은 인간의 고통과 불안에 싸인 자신의 실존을 직시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장대 높이 뛰기하듯 뛰어넘어 저편, 피안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관념이란 그 고통을 주는 것, 불안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집착에 의해 빚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다시 읽어본다. "시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관념의 족쇄를 풀어주어 언어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바람마음 2022.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