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잘 가라 / 도종환 그대 잘 가라 도종환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가늠할 수 없는 .. !시 2011.06.25
몽골 초원에서,몽골초원에서 2,3,4 / 박영근 몽골 초원에서 박영근 외줄기, 하얗게 빛나는 길이 느리게 초원을 가다 지평선 속으로 사라진다 하늘에도 바람 속에도 내가 기어 부를 노래는 없다 저 홀로 깊어져 푸르러갈 뿐 바람이 기르는 몇떼의 구름도 이내 흩어진다 그리고 여기, 시간은 있는가 가없는 초원에 한낮에 풀들이 마르고 앉은뱅이 .. !시 2011.06.24
마야꼬프스키 마야꼬프스키 박영근 옛날도 훗날도 없다 시간의 경계 위에서 늙어가는 길이 있을 뿐 늘 오늘이듯 풀들은 저렇게 자라고 내 마음에 그득해지는 눈부신 여름빛 등성이 밤을 새워 슬레이트 지붕을 두드리던 빗소리는 발자국 하나 없다 무덤이 꽃을 피우는 이 짧은 한나절이 문득 바람에 기우뚱 넘어지.. !시 2011.06.23
들국화 / 곽재구 들국화 곽재구 사랑의 날들이 올 듯 말 듯 기다려온 꿈들이 필 듯 말 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무릎걸음으로 걸어간 절벽 끝으로 당신은 하얗게 웃고 오래된 인간의 추억 하나가 한 팔로 그 절벽에 끝끝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집 <서울 세노야> 나의 추.. !시 2011.06.17
연두에 울다/ 나희덕 연두에 울다 나희덕 떨리는 손으로 풀죽은 김밥을 입에 쑤셔넣고 있는 동안에도 기차는 여름 들판을 내 눈에 밀어넣었다. 연두빛 벼들이 눈동자를 찔렀다. 들판은 왜 저리도 푸른가. 아니다. 푸르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연두는 내게 좀 다른 종족으로 여겨진다. 거.. !시 2011.05.11
꽃은 언제나 진다 / 김종미 꽃은 언제나 진다 김종미 나를 항복시키려고 꽃이 핀다 어떠한 권력도 어떠한 폭력도 이와 같은 얼굴을 가질 수 없어 며느리밑씻개란 어처구니없는 이름의 꽃도 내 앞에 권총을 빼들었다 총알을 장전한 꽃 앞에 이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이중 삼중 문을 닫고 커튼까지 쳤으나 몽유에 든 듯 여기가 어딘.. !시 2011.04.25
여행은 혼자 떠나라 /박노해 여행은 혼자 떠나라 박노해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때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 갈 때 달려가도 멈춰 서도 앞이 안 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충분한 존재감이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함.. !시 2011.04.12
뼈아픈 후회 / 황지우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슴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 !시 2011.04.06
숲 / 정희성 숲 정희성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예전에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인가 혼자.. !시 2011.04.05
농담할 수 있는 거리 / 윤희상 농담할 수 있는 거리 윤희상 나와 너의 사이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린다 나와 너의 사이는 멀고도, 가깝다 그럴 때, 나는 멀미하고, 너는 풍경이고, 여자이고, 나무이고, 사랑이다 내가 너의 밖으로 몰래 걸어나와서 너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나는 꿈꾼다 나와 너의 사이가 농담할 수.. !시 201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