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지 않는 별 / 복효근 뜨지 않는 별 복 효근 별이라 해서 다 뜨는 것은 아니다 뜨는 것이 다 별이 아니듯 오히려 어둠 저 편에서 제 궤도를 지키며 안개꽃처럼 배경으로만 글썽이고 있는 뭇별들이 있어 어둠이 잠시 별 몇개 띄워 제 외로움을 반짝이게 할 뿐 가장 아름다운 별은 높고 쓸쓸하게 죄 짓듯 앓는 가슴에 있어 그 .. !시 2010.01.11
건강한 슬픔 / 강연호 권옥연 <스페인에서> 건강한 슬픔 강연호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라는 안부도 건넬 틈도 없이 그녀는 문득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 한때 그녀가 꿈꾸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나도 그때 한 여자를 원했었다 그녀는 아니었다 그 정도 아는 사이였던 그녀와 나는 그 .. !시 2010.01.11
사랑 / 안도현 사랑 안도현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 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로 하여 그이가 눈물짓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소금.. !시 2010.01.11
당신의 정원은 환하다 / 이은림 당신의 정원은 환하다 이은림 당신의 정원은 분주하다 구름 다발을 든 꽃나무들 곁에서 당신은 천천히 구름을 뜯어 먹고 질 좋은 비를 뱉는다 곳곳에 꽂히는 빗소리들 당신의 몸엔 꽃잎이 열린다 주렁주렁 꽃잎을 달고 정원 입구에 서 있던 당신 지나가던 바람이 꽃잎을 흔든다 멀리 있던 강물이 정원.. !시 2010.01.11
겨울 아침 / 안도현 겨울 아침 안도현 눈 위에 콕콕 찍어 놓은 새 발자국 비틀거리지 않고 걸어간 새 발자국 한 글자도 자기 이름을 남겨두지 않은 새 발자국 없어졌다, 한 순간에 새는 간명하게 자신을 정리했다 내가 질질 끌고온 발자국을 보았다 엉킨 검은 호스 같았다 날아 오르지 못하고, 나는 두리번 거렸다 시집 - .. !시 2010.01.11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윤성택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윤성택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 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 넣고 앞으로는 .. !시 2010.01.11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 !시 2010.01.11
그녀에게 / 박정대 그녀에게 박정대 고통이 습관처럼 밀려올 때 가만히 눈을 감으면 바다가 보일 거야 석양빛에 물든 검은 갈색의 바다, 출렁이는 저 물의 大地 누군가 말을 타고 아주 멀리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일 거야 그럴 때, 먼지처럼 자욱히 일어나던 生은 다시 장엄한 음악처럼 거대한 .. !시 2010.01.11
별이 지는 날 / 백남준 별이 지는 날 박남준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그가 떠나서만이 아니고요 산다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빨래를 널듯 내 그리움 펼쳐 겨울 나뭇가지에 드리웠습니다 이제 해 지면 깃발처럼 나부끼던 안타까움도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을까요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별이 뜨고 별 하나 지는 밤 언제인.. !시 2010.01.11
수화(手話)/ 위선환 수화(手話) 위선환 그해에는 자주 눈이 내렸다 지붕 밑과 계단에 눈 묻은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불빛에 반사된 밤하늘 여기저기로 눈은 아직 내리 쌓이고 눈더미보다 희게 무겁게 적막이 쌓였다 갈 곳이 없었다 내가 아는 몇 사람은 눈에 파묻혔다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나를 향.. !시 2010.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