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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11월 11일

날이 차가워졌다. 어제부터 내의를 꺼내입었다. 내의를 입는다는것은 곧 겨울이라는 뜻. 날이 추워지면 돌아보기에 좋은 시간이 온다. 앞을 보고만 가도 세계 속의 일원으로 살기도 힘든 이 세상에서 돌아본다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갈 힘을 얻게 된다. 되돌아본다는 것은 겸손해지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헛된 욕망들을 거를 수 있게 해 준다. 지금 일어나는 이 욕망이 내 삶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잘 산다'는 의미는 '사이가 좋다'는 의미와 같다고 한다. 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 관계, 특히 가까운 사이가 좋다는 것이 어느만큼 삶의 질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말해주는 말이기도 하겠다. 나는 잘 살고 있..

단상 2021.11.11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서

1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2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헤어져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수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비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는 알았네 3 이젠 모두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 될 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일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후렴)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2021.10.29

해파리 섬 / 여한솔

해파리 섬 여한솔 손을 담그면 돌 같은 것이 만져진다. 단단한 미래가 부서진 일이다. 해풍에 빌려나온 기체가 다시 새나 언덕으로 들어가 흐른다. 뻐를 바른다. 가시나무가 자란다. 바다의 밑바닥 맨 아래 유리컵의 둥근 밑동을 본다. 물에 번진 피와 해양생물의 닮은꼴 휘감는 것들은 은은하다 꿈의 물질처럼 아름다운 테두리를 떠올린다. 첨벙 뛰어든 소리 오래된 섬에 오래된 할머니가 있다. 능선을 따라 흰 새가 울음을 떨어트린다. 조류가 바뀐다. 부드러운 독이 자라서 맑은 해파리, 해파리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돌을 지난다. 그때 나는 해변에 앉아 부서진 조개를 주웠다. 긁힌 바닥 얼음장 같은 믿음을 깨고 얼음장 같은 믿음 조각들이 찌르고 깨트려 찾는 무언가가 단단히 상처나는 동안 곡선은 빈자리를 채운다. 바다 위에..

!시 202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