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 김영승 풍경 김영승 풍경으로 살던 내가 풍경을 보니 아파트 夜景이 그저 누가 기증한 각막에, 안구의 글썽거림 같다 차창 밖 야경엔 마을버스 內 모니터 화면이 비치고 左의 차량 행렬이 右로 비친다 불빛은 두 줄의 붉은 줄 * 참 쓸쓸한 밤이다. 나이면서 내 자신이 혼란스러울 때 나를 어떻게 .. !시 2016.12.20
불면 / 강정 불면 강정 오래 전에 본 적 있는 그가 마침내 나를 점령한다 창가에서 마른 종잇장들이 찢어져 새하얀 분(粉)으로 흩어진다 몸이 기억하는 당신의 살냄새는 이름 없이 시선을 끌어당기는 여린 꽃잎을 닮았다 낮에 본 자전거 바퀴살이 허공에서 별들을 탄주하고 잠든 고양이의 꼬리에선 .. !시 2016.12.18
얼음처럼 /이장욱 얼음처럼 이장욱 나는 정지한 세계를 사랑하려고 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세계를 나는 자꾸 물과 멀어졌으며 매우 견고한 침묵을 갖게 되었다. 나의 내부에서 나의 끝까지를 다 볼 수 있을 때까지. 저 너머에서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들을. 그것은 꽉 쥔 주먹이라든가 텅 빈 손바닥 같.. !시 2016.12.15
반성 743 / 김영승 터널은 직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다 반성 743 김영승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왔다 ―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 !시 2016.12.15
양 기르기 / 안희연 양 기르기 안희연 네가 아는 가장 연약하고 보드라운 것을 생각해 봐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한 마리 작은 양이었다 너는 그것을 잘 돌봐줄 것을 당부했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그날, 꿈속에서 너를 본 이후로 나는 양과 함께 살아간다 목이 마르거나 춥진 않을지 간밤 늑.. !시 2016.12.15
당신의 거처 / 조용미 당신의 거처 조용미 처음의 꽃이, 지고 있다 저 커다란 흰 꽃은 오래도록 피어 천 년 후엔 푸른 꽃이 되고 다시 천 년 후엔 붉은 꽃이 된다 하니 고독에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백 년을 거듭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차츰 각자의 색을 갖게 되는 것이다 늦은 가을이 계속되는 지난 수십 년 동.. !시 2016.12.13
유월의 독서/ 박준 유월의 독서 박준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 !시 2016.11.24
<안녕, 드라큘라 >/ 하재연, <Let me in> / 김경주 안녕, 드라큘라 하재연 당신이 나를 당신의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면 나는 아이의 얼굴이거나 노인의 얼굴로 영원히 당신의 곁에 남아 사랑을 다할 수 있다. 세계의 방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햇살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살아있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은 당신의 .. !시 2016.11.23
지금은 우리가 / 박준 지금은 우리가 박준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중에서 !시 2016.11.23
사랑의 언어 / 김현 1)사랑의 언어 김현 남자가 문을 열고 떠났다 가지 마 남자가 손을 뻗었으나 가슴이 열렸다 새가 날아갔다 남자는 따라갔다 새는 시계탑 위에 앉아 떨어지는 것을 보며 지저귀고 눈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은 눈으로 그리고 입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입으로 들어라 가슴이 열린 남자는 쭈그.. !시 2016.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