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마음 268

드라마, 영화, 책

드라마를 보며 보낸 시간이 한달여 되어간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내가 넷플릭스의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 '디어 마이 프렌즈', 그리고 '스물다섯 스물하나', '미스터 선샤인'... 참 이상한 것이 좀처럼 드라마에는 몰입이 되지 않았던 내가 이번은 꽤 재미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달이 되어가니 흥미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눈과 귀라는 감각을 써야 해서인지 마치 한적한 시골에서 도시로 나와 한동안 도시의 문명에 신기해하고 들뜨다가 어느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적한 시골이 그리워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뭔가 피로를 느끼게 되면서 책을 읽는 편안함이 그리웠다. 그동안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모처럼 몰입할 수 있었던 시간이고, 그러나 이제 다시 작별을 고한다. 당분간, 안녕!

바람마음 2022.03.28

토요일...

영하 10도를 오가는 날이 이어진다. 바닥 난방과 공기 난방을 계속 돌리면서 마음이 편치않다. 요즘은 문을 닫는 것이 경제적으로 낫기 때문이다. 퇴근할때 마다 날이 추운 며칠만이라도 쉬고 집안일과 메뉴 점검을 해야겠다 생각하지만 아침이면 다시 나오게 된다. 그리고 손님이 오시면 내가 문을 닫았더라면 문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을텐데 하는 생각에 마감시간까지 지키게 되는 것이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태어나고 또 나로인해 이 세상에 뿌려진 것에 대해서... 그것은 아이들과 내가 쓴 몇편의 시들과 그리고 살면서 지게 되는 빚과 이 가게... 그래서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짐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야할 이유고 희망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뿌린 것을 잘 가꾸고 내 손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

바람마음 2021.01.09

눈, 내린다

눈 내린다. 내가 좋아하는 언덕 위에도... 눈 맞는 언덕은 여전히 침묵하고 나는 저 침묵을 사랑한다. 보도블럭에 쌓인 눈을 쓸었다. 늦은 손님에게 음료를 내어드리며 마지막 손님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첫 손님은 너무나 명확한데 마지막 손님은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나서야 알게 된다. 이렇게 지나고나야만 아는 것들이 있다.

바람마음 2021.01.06

예상은 빗나가지 않고

거리두기 2단계 이틀째, 예상대로 오늘 최저의 매출을 기록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비수기라는 한 겨울에도 오늘 같은 매출은 없었다. 판매한 음료보다 내가 하루종일 마신 음료가 많았다. 심심해서, 출출해서,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 안가서, 환풍기에서 밀려들어오는 옆집의 생선구이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 그라인더에 원두를 갈고 우유를 섞고 소스를 넣고... 그래도 시간은 남아 돌았다. 책을 읽는 시간이 너무 널널하니 오히려 책을 읽는 것이 피로였다. 혼자있는 공간이라 난방도 틀지 않고 언제나 겨울이면 발이 차가운 내 발은 몸과 전혀 다른 체온으로 다른 사람의 발을 달아놓은 것 처럼 털부츠 속에서 차가워져도 아직은 견딜만 하였다. 단골인 보험 설계사도 돌아가고 손님을 모시고 온 부동산에서 일하는 남자들도 ..

바람마음 2020.11.25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오늘부터 2주간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된다. 전에도 2단계 시행은 있었지만 그때와 같은 2단계가 아닌, 지금은 영업을 할 수 없는 형태다. 그때는 면적이 넓거나 프렌차이즈일 경우만 홀에서의 영업 금지, 그리고 테이크 아웃만 허용이 되었고, 작은 개인 카페는 저녁 시간 제한만 있었을 뿐 크게 다름없이 영업은 가능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홀영업 전면 금지, 그리고 테이크아웃 배달만 가능하다. 우리 카페는 홀영업 위주이고 배달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테이크아웃이 많은 지역이 아닌 동네 상권의 사랑방 같은 카페이다. 2주면 한 달의 절반, 그리고 2주로 끝난다는 보장이 없는 2주... 처음은 그저 두세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이런 상황이 일년이 되어가고, 기약할 수 없는 앞날이 되고보니 마치 싸움도 해보지 않고..

바람마음 2020.11.24

이곳을 나갈 때의 표정

커피숍을 운영한지 일년이 지났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작했던 일, 커피숍은 내게는 친근한 장소였지만 커피 외의 음료는 마셔본 적이 없는 내가 수십가지가 되는 음료를 맛도 모르고 시작했던 그 무모한 일을 돌아보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씩 이 세계를 알면서 나는 밤낮으로 음료의 메뉴와 레시피만 생각했다. 꿈인지 생각인지 구별할 수 없는 잠을 잤다. 그래도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우울했고 좌절했다. 자신없는 음료가 나가고나면 바로 그대로 해서 먹어보고 괜찮으면 안도했고 맛이없으면 그 손님이 다시 올 때까지 신경 쓰였다. 기성품은 점점 줄였고 되도록 직접 만든 음료들로 대체해갔다. 그럼에도 맛에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그래도 나는 내게 주문을 외운다. 그렇..

바람마음 2020.11.20

가을비가 다시 내리고

얼마전 인터넷에서 구매한 책이 도착했다. 모두 세 권이었는데 한 권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한 권은 기대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이었으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글을 잘 쓰는구나, 하고 끄덕였을 뿐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잘 쓰려고 한 문장들이 곳곳에서 티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 책은 자신의 특별한 직업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해주는)을 통한 특별한 경험을 쓴 글이었는데 그토록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들이 정말 필요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주었다. 필요이상의 치장처럼, 아니면 필요이상의 과시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 묘사들이 작가가 그 책을 내려고 다짐한 그 어떤 목적 -분명 목적이 있는 책이었으므로- 을 위한 것이었나는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한 권은 김애란의「바깥은 여름」이란 책이..

바람마음 2020.11.19

매미가 울기 시작하는 아침

창밖이 환해지면서 매미가 운다. 선풍기가 돌아가고 나는 형광등 불빛 아래 밤새도록 앉아 아침을 맞는다 올해는 비가 자주 내렸지만 소나기 처럼 짧게 내리다 그치곤 했다. 작년이 더운 여름이었다면 올해는 습한 여름으로 얼마동안은 기억될 것이다. (요즘은 너무 잘 잊어서 나의 기억들을 자신할 수가 없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꿈결처럼 느껴진다. 흘러흘러 나는 이곳에 있고 또 시간을 따라 흘러흘러 흘러가리라.

바람마음 201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