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마음 268

'流'

水流花開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이 문장을 가만히 생각하면 '꽃은 흐르는 물에서 핀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물이 흐른다는 것은 시간이 쉼 없이 지나간다는 것이고 꽃이 피는 것은 지금 내 앞에서 피는 것이다. 강물은 같은 곳을 두번 지나가지 않는다. 흘러간 강물에 대해선 마음에서도 흘려보내주는 것, 그것을 인정하고 지금 이 시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꽃피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流'라는 뜻을 가슴에 담아본다.

바람마음 2022.12.25

무디어지기

다치고나서 의도치 않게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70일이 지난 지금은 통증도 어느정도 가라앉고 통깁스에서 보조기로 바꾼 탓에 쉴 때는 마음대로 벗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비로소 쉰다는 기분이 이제야 든다. (아직도 다리를 내리면 순식간에 붓고 검붉은 색으로 변하면서 찌릿찌릿하다.) 몸이 하루하루 굳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침대에서 운동을 한다고 해도 걷지를 못하니 한쪽다리는 이미 근육이 다 빠져버리고 전체적으로 뻣뻣하다. 한쪽다리로 겨우 서서 잠깜잠깐 씻고 설거지하고, 10분을 일하면 30분을 거상하며 누워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지옥에서 막 탈출하여 나온 사람처럼 평온하고 행복하다. 책을 읽다가 '무디다'는 단어에서 멈추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마음이 ..

바람마음 2022.12.23

해탈이란

"해탈이란 자신을 얽어매는 관념의 족쇄에서 벗어남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은 인간의 고통과 불안에 싸인 자신의 실존을 직시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장대 높이 뛰기하듯 뛰어넘어 저편, 피안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관념이란 그 고통을 주는 것, 불안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집착에 의해 빚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다시 읽어본다. "시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관념의 족쇄를 풀어주어 언어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바람마음 2022.12.23

김국진 TV 유튜브 거침없는 골프

요즘 즐겨 보는 유튜브가 바로 김국진의 '거침없는 골프'다. 난 골프를 칠 줄도 골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냥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스포츠는 관전하는 스포츠였다. 축구 경기를 보고 골프 경기를 보고 탁구 경기를 보고... 그런데 이 프로는 김국진과 게스트, -물론 게스트들이 최고 수준의 골퍼들이다-가 골프를 치며 나누는 대화를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얼예능프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끄럽고 작위적이고 웃음의 포인트를 잡아 편집하는 것과는 다른 처음부터 끝까지 골프에 대한 이야기다. 그 대화가 상대를 배려하고 겸손하게 응원해주는 말이어서 실수를 하면 뒷바람이 너무 셌죠?, 오른쪽을 의식했죠? 라든가 가끔씩 기가막히게..

바람마음 2022.11.26

아침 산책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집 근처를 산책했다. 이렇게 환한 아침에 산책한다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어서 그동안 휴일 두 세번이 다였던 것 같다. 아파트 주변에 심어진 수종들을 보면서 나무 이름, 꽃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며 걸었다. 지금은 철쭉이 피어나고 있었고 영산홍은 봉오리가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 죽단화도 드문드문 심어져 있었고 하얀 조팝나무 꽃들도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나는 지금이 좋다. 참 좋다. 참...

바람마음 2022.04.21

요즘 나는...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정리를 깨끗이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집안을 늘 정돈한다. 그것은 휴일의 시간이 너무 귀하기 때문인데 평상시에 집안을 돌보지 않으면 모처럼의 휴일을 집안 일을 하느라 허무하게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충실한 삶, 내 주변을 잘 정돈하며 사는 삶, 그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침 출근할 때면 가로수 은행나뭇잎이 점점 초록으로 번져간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봄은 매년 찾아오지만 매년 새봄인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것이 천성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에겐 성숙한 인간 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정서적인 독립이 전제가 되어야만 관계가 편하다는 것을. 이제는 외로움을 한적한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한적하고..

바람마음 2022.04.21

좋은 관계, 나쁜 관계

나쁜 사람과의 깊은 관계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조정하며 그저 그 관계는 종속적일 뿐이다. 그리고 자기를 통해서만 인생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바람직한 관계는 상대가 연장자이거나 권위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평적측면이 존재해야 한다. * 김경일 교수가 유튜브 동영상에서 한 말이다. 나는 예전부터 가장 좋은 관계, 그러니까 내가 추구하는 관계는 호칭 앞에 '친구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친구같은 아빠, 친구같은 남편, 친구같은 언니, 친구같은 선배, 친구같은 상사, 친구같은 선생님.... 친구라는 것은 수평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수평적 관계는 인격체로서의 상호존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것이 결코 당연할 수 없는 관계, 저 동영상을 보면서 내 생각이 틀리지 ..

바람마음 2022.04.20

용서에 대하여

용서라는 말, 예전에는 누구를 용서한다는 말 자체가 실례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용서의 전제에는 자신이 과연 용서를 해줄 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고 그렇다고 끄덕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용서는 어떤 한 부분에서의 일이라는 것을. 전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어떤 사건, 어떤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 상처를 입힐 수도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관계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어난 책임이 100대 0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잘못을 한 사람, 더 많은 원인이 된 사람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라는 것을 강박증처럼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미워하는 것은..

바람마음 2022.04.15

벚꽃길

어제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10시쯤 집에서 가까운 벚꽃길을 걸었다. 가로수가 거의 은행나무이지만 300 미터 정도가벚꽃길이었다. 그 흔한 벚꽃을 못보나보다 했는데 벚꽃만발한 그 아래를 혼자 걷는 밤길이 너무도 행복했다. 그렇지. 옆에 없으면 찾아가면 되는 거였지.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만 했지 정작 신발을 신고 나설 생각을 못했다. 오늘밤도 난 저 길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벚꽃이 다 지고 초록잎이 날 때까지 밤마다 난 저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다시 살아있다는 이 느낌... 심장이 뛰는 곳이 자꾸만 간지럽다.

바람마음 202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