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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골목 / 안현미

고장난 가로등처럼 서 있는 사내를 지나 방금 도착한 여자의 어깨에선 사막을 건너온 바람의 냄새가 났고 이 도시의 가장 후미진 모퉁이에선 골목이 부레처럼 부불어올라 고장난 가로등처럼 서 있던 사내의 구두가 담기고 있다 첨범, 여자는 의족을 벗고 부풀어오른 골목으로 물소리를 내며 다이빙한다 꼬리지느러미를 활 발히 흔들며 언어 이전으로 헤엄쳐간다 주름잡는다 여자의 주름에선 언어 이전에 있는 어떤 어항에서 꺼낸 것 같은 언어가 버블버블 퐁퐁 투명한 골목을 유영한다 인간의 남자를 사랑하여 아낌없이 버렸던 모든 것들 이 버블버블 다시 태어난다 그사이 젖은 구두를 벗은 사내도 산소통을 부레처럼 달고 언어를 떠나온다 어항 골목 고장난 가로등엔 물고기 달이 커진다 퐁퐁 골목밖으로 여자의 의족이 폭죽처럼 떠오른다 ―안현미..

!시 2022.04.21

아침 산책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집 근처를 산책했다. 이렇게 환한 아침에 산책한다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어서 그동안 휴일 두 세번이 다였던 것 같다. 아파트 주변에 심어진 수종들을 보면서 나무 이름, 꽃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며 걸었다. 지금은 철쭉이 피어나고 있었고 영산홍은 봉오리가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 죽단화도 드문드문 심어져 있었고 하얀 조팝나무 꽃들도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나는 지금이 좋다. 참 좋다. 참...

바람마음 2022.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