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 조운 오랑캐 꽃 조운 넌지시 알은 체 하는 한 작은 꽃이 있다 길가 돌담볼에 외로이 핀 오랑캐꽃 너 또한 나를 보기를 나 너 보듯 했더냐 나, 너 보듯 나를 보는 이, 나, 너를 생각하듯 나를 생각하는 이... !시 2010.05.02
어떤 결심 / 이해인 어떤 결심 이해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 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 !시 2010.04.29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 박정대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박정대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그대가 없어도 혼자 담배 피우는 밤은 오네 보르헤스의 책을 펼쳐놓고 <꿈의 호랑이들>을 읽는 밤은 오네 밤이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도 아닌데 깊은 밤 속에서 촛불로 작은 동굴을 하나 파고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는 밤은 오네 .. !시 2010.04.28
후박나무 잎새 하나가 / 이경림 후박나무 잎새 하나가 이경림 후박나무 잎새 하나가 내 사랑이네 저 후박나무 그림자가 내 사랑이네 그 흔들림 너머 딱딱한 담벼락이 내 사랑이네 온갖 사유의 빛깔은 잎사귀 같아 빛나면서 어둑한 세계 안에 있네 바람은 가볍게 한 생의 책장을 넘기지만 가이없어라 저 읽히지 않는 이파리들 그 난해.. !시 2010.04.22
길 / 김기림 길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 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젖어서 돌아오곤 했.. !시 2010.04.20
원시(遠視) / 오세영 원시(遠視)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 !시 2010.04.15
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 / 고영민 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 고영민 산비알 흙이 노랗게 말라 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푸석푸석 들떠 있다 저 밭의 마른 겉흙이 올봄 갈아엎어져 속흙이 되는 동안 낯을 주고 익힌 환한 기억을 땅 속에서 조금씩 잊는 동안 축축한 너를, 캄캄한 너를, 나는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나 슬픔이라고 불.. !시 2010.04.14
이따금 사랑하는 이와/ W.휘트먼 이따금 사랑하는 이와 W.휘트먼 이따금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면 보답 없는 사랑에 열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울화가 치밀곤 한다. 그러나 이제 보답 없는 사랑이란 없는 법이고 무슨 수든 보답이 있게 마련이라고 난 생각한다. (일찍이 한 사람을 열렬히 사랑했고 그것은 짝사랑으로 끝났지만 그.. !시 2010.04.12
공원 벤치 / 박재희 공원 벤치 박재희 멀리서 산책을 하다가도 의자를 보면 앉고 싶어진다 의자에는 항상 누군가의 체취가 묻어 있다 한가한 오후 노부부가 쓸쓸함을 기대다 가고, 아이들이 실 웃음을 흘리다 가고, 그늘이 몰래 쉬었다 가고, 가끔은 석양도 붉은 하늘을 끌고 와 놀다 간다 늦가을 날 의자 위에 나뭇잎이 .. !시 2010.03.29
이별의 속도/ 박남희 이별의 속도 박남희 구름과 이별한 빗방울이 전속력으로 뛰어내려 제 몸을 부수는 것은 목마른 땅의 간절한 눈빛이 빗방울을 전속력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별의 속도는 마음이다 마음이 버리고 마음이 잡아당긴다 언뜻 보면 지구는 태양이 버린 마음이고 달은 지구가 버린 마음이다 멀.. !시 201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