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 눈물 / 신달자 헛 눈물 신달자 슬픔의 이슬도 아니다 아픔의 진물도 아니다 한 순간 주르르 흐르는 한줄기 허수아비 눈물 내 나이 돼바라 진곳은 마르고 마른곳은 젖느니 저 아래 출렁거리던 강물 다 마르고 보송보송 반짝이던 두 눈은 짓무르는데 울렁거리던 암내조차 완전 가신 어둑어둑 어둠 깔리고 저녁 놀 발등.. !시 2010.01.16
개망초꽃/ 안도현 개망초꽃 안 도 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 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시 2010.01.16
기차는 깁는다 / 전태련 기차는 깁는다 전태련 기차는 두 줄로 된 지퍼 채우듯 갈라진 것들을 깁는다 마을과 내川를 깁고 절개된 산과 바닥이 드러난 강 소낙비 맞은 통장을 깁고 바람 든 무 같은 아내의 철 이른 갱년기, 남북으로 터진 지도를 깁는다 기차를 업어야 한 몸이 되는 철길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 떡가래 빠지듯 따.. !시 2010.01.16
곡선의 말들 / 김선태 곡선의 말들 김선태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무심코 지나치는 걸어가다, 돌아가다, 비켜서다, 쉬다 같은 동사들... 느리다, 게으르다, 넉넉하다, 한적하다, 유장하다 같은 형용사들... 시골길, 자전거, 논두렁, 분교, 간이역, 산자락, 실개천 같은 명사들... 직선의 길가에 버려진 곡선의 말들. 언어를 .. !시 2010.01.16
옛 노트에서 / 장석남 옛 노트에서 장석남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시 2010.01.16
찔레 / 문정희 찔레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 !시 2010.01.16
새는 날아가고 / 나희덕 새는 날아가고 나희덕 새가 심장을 물고 날아갔어 창밖은 고요해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접시를 앞에 두고 거기 놓인 사과를 베어물었지 사과는 조금 전까지 붉게 두근 거렸어 사과는 접시의 심장이었을까 사과씨는 사과의 심장이었을까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담겼다 비워지지 심장을 .. !시 2010.01.15
안부가 그리운 날 / 양현근 두물머리 나루터에서, 오늘 안부가 그리운 날 양현근 사는 일이 쓸쓸할수록 두어 줄의 안부가 그립습니다 마음안에 추절추절 비 내리던 날 실개천의 황토빛 사연들 그 여름의 무심한 강역에 지즐대며 마음을 허물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완전하게 벗는 일이라는 걸 나를.. !시 2010.01.15
갈퀴 / 이재무 갈퀴 이재무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 !시 2010.01.15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가는 소리 유안진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 축 끌며 따라오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 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 !시 201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