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우레 / 박형준 봄 우레 박형준 어머니 당신은 언제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보십니까 당신의 그리움은 언제 배추 이랑에 때까치처럼 내려앉습니까 젊었을 적 눈썹 그릴 때만 보던 손거울은 어디에 숨겨두셨습니까 감꽃이 소낙비처럼 떨어지는 날엔 당신은 친정집 툇마루에 처녀로 앉아 있는 꿈을 꾸십니까 당신 없는 .. !시 2010.01.15
가난한 새의 노래 / 이해인 photo by, golden fish 가난한 새의 기도 이해인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 주십시요 가진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 주십시요 예측할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 !시 2010.01.15
자연의 합창 / 최영미 자연의 합창 최영미 빗물에 떠내려가는 유년의 추억들. 장마철에 개울물 불어나는 콸콸 비바람에 나뭇가지 부러지는 딱딱 뒤란의 우물에 두레박이 닿는 찰싹 시골 개구리의 와글와글 합창 한밤중에 사촌들과 수박밭에 엎드려 요란한 개구리 울음에 오그라들던 훔친 수박을 배 터지게 나눠먹고 오줌.. !시 2010.01.15
고통에게 2 /나희덕 photo by 황금물고기 고통에게 2 나희덕 절망의 꽃잎 돋을 때마다 옆구리에서 겨드랑이에서 무릎에서 어디서 눈이 하나씩 열리는가 돋아나는 잎들 숨가쁘게 완성되는 꽃 그러나 완성되는 절망이란 없다 그만 지고 싶다는 생각 늙고 싶다는 생각 삶이 내 손을 그만 놓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 !시 2010.01.15
긴 편지 / 나호열 photo by 황금물고기 긴 편지 나호열 풍경風磬을 걸었습니다 눈물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너무 높이 매달아도 너무 낮게 내려놓아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오래 있다가 이윽고 아주 오랜 해후처럼 부등켜 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와르르 눈물이 깨.. !시 2010.01.15
봄날은 간다 / 안도현 photo by 황금물고기 봄날은 간다 안도현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붙여 어쩌겠.. !시 2010.01.15
새로 핀 꽃들 / 박두순 새로 핀 꽃들 박두순 안개는 일찌감치 걷히고 벌들이 기웃거리는 아침 어제 보지 못한 새 얼굴들이 맑게 맑게 서 있다. 그들 옆에 가만히 서니 오늘은 누구하고도 다투지 않을 것 같다. *<박두순 동시집>, 예림당 우리 큰 딸부터 막내가 읽었던 시집, 마음이 우울하거나 가벼워지고 싶을 땐 가끔씩 .. !시 2010.01.15
시인 / 정일근 시인 정일근 시 한 줄 잘 빚어놓고 마침표를 찍을 것인지 마침표를 지워버릴 것인지 오래 고민하는 시간이 있다 시가 문장부호 하나에 무거워할 때가 있다 시가 문장부호 하나에 가벼워질 때가 있다 그걸 아는 이가 시인이다 사람 사는 일에도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쉼표로 쉬어가야 할 때, 물음표로.. !시 2010.01.15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 !시 2010.01.15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바람으로 막아 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 !시 201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