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 복효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연가.7 복효근 얼음으로 된 천정 위에 누군가 얼음을 깨고 들이미는 것은 일용할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애타게 구하는 것 속에는 언제나 낚시바늘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때로 회의합니다 붕어가족이여 우리가 누군가의 맛나는 안주가 되어 그들의 식욕을 돋구게 된다면 그럼.. !시 2010.01.15
명자꽃/ 안도현 , 도로시를 위하여/ 기형도 명자꽃 안도현 그해 봄 우리 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누나의 아랫입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도톰한 것을 생각하고는 혼자 뒷방 담요 위에서 명자나무 이파리처럼 파랗게 뒤척이며 명자꽃을 생각하고 또 문득 누.. !시 2010.01.15
요즘의 발견 / 나희덕 요즘의 발견 나희덕 잊은 듯이 한참 있다가 뚜껑을 열면 솥바닥에 자리잡은 절망의 크기만큼 온전한 한덩이의 누룽지가 안간힘으로 솟아올라 있다 구수한 누룽지 한조각 만드는 것이 요즘 나의 즐거움이다 누룽지를 들어내고 환한 솥바닥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요즘 나의 발견이다 처치 곤란한 찬.. !시 2010.01.15
꽃눈이 번져 / 고영민 꽃눈이 번져 고영민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누군가 이 시간, 눈 빠알갛게 나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나를 흔들어 깨운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눈 부비고 일어나 차분히 옷 챙겨입고 나도 잠깐, 어제의 그대에게 멀리 다니러 간다는 생각이 든다 다녀올 동안의 설렘으.. !시 2010.01.14
마침표를 뽑다 / 이덕규 마침표를 뽑다 이덕규 살아있는 문장 끝에 박힌 마침표처럼 흔들거리는 개 말뚝 다시 고쳐 박자고 무심코 쑥 뽑았는데, 아뿔사 잡을 새도 없이 어떤 넘치는 힘이 무거운 쇠사슬을 끌며 멀리 동구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쾌한 소리 듣는다 일생을 단 한 줄로 요약한 단문 끝에 말뚝처럼 박힌 뒷산 무덤가 .. !시 2010.01.14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 / 전동균 Alpo Syvänen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 전동균 1 봄밤, 삼청공원 활짝 핀 벚꽃나무 그늘에서 연인들이 쪽,쪽 입맞추는 소리 들린다 그래, 사랑은 이 세상의 사랑은 확인되어야 하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고 더운 몸으로 껴안을 수 있어야 하지 2 나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 .. !시 2010.01.14
목련에 기대어 / 고영민 목련에 기대어 고영민 활짝 핀 목련꽃을 표현하고 싶어 온종일 목련나무 밑을 서성였네 하지만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네 목련꽃을 쓰는 동안 목련꽃은 지고 목련꽃을 말해보는 동안 목련꽃은 목련꽃을 건너 캄캄한 제 방(房)에 들어 천천히 귀가 멀고 눈이 멀고 휘어드는 햇살을 따.. !시 2010.01.14
지금은 꽃피는 중 / 류외향 지금은 꽃피는 중 류외향 꽃 피는 시간은 길고 길었으나, 꽃들의 마음을 알지 못해 전 생애를 걸고 피는 꽃들을, 자궁 밖으로 밀어내는 이 봄의 통증은 달을 헛짚어오는 월경처럼 어지러웠고 저들이 이 세상의 허공에다 던진 아름답고 슬픈 투망에는 무엇이 건져질는지 발소리 삭인 채 다가와 앞질러 .. !시 2010.01.14
장미의 날 / 양애경 장미의 날 양애경 장미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가지 위에 솜털 같은 가시들을 세우고 기껏 장갑 위 손목을 긁거나 양말에 보푸라기를 일으키거나 하면서 난 내 자신쯤은 충분히 보호할 수 있어요 라고 도도하게 말하는 장미의 기분 오늘 나는 하루 종일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 !시 201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