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743 / 김영승 터널은 직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다 반성 743 김영승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왔다 ―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 !시 2016.12.15
외부 정보와의 단절 훈련을 위한 팁 밀려오는 외부 정보와 전투를 벌이는 뇌의 스트레스 시스템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 현대인의 뇌 상태이다. 스트레스 시스템만 계속 작동되면 충전 없이 뇌의 에너지만 소진이 되어 버리고 결국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 오게 된다 그래서 하루에 10분이라도 외부 정보와의 연결을.. !글 2016.12.15
양 기르기 / 안희연 양 기르기 안희연 네가 아는 가장 연약하고 보드라운 것을 생각해 봐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한 마리 작은 양이었다 너는 그것을 잘 돌봐줄 것을 당부했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그날, 꿈속에서 너를 본 이후로 나는 양과 함께 살아간다 목이 마르거나 춥진 않을지 간밤 늑.. !시 2016.12.15
당신의 거처 / 조용미 당신의 거처 조용미 처음의 꽃이, 지고 있다 저 커다란 흰 꽃은 오래도록 피어 천 년 후엔 푸른 꽃이 되고 다시 천 년 후엔 붉은 꽃이 된다 하니 고독에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백 년을 거듭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차츰 각자의 색을 갖게 되는 것이다 늦은 가을이 계속되는 지난 수십 년 동.. !시 2016.12.13
유월의 독서/ 박준 유월의 독서 박준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 !시 2016.11.24
<안녕, 드라큘라 >/ 하재연, <Let me in> / 김경주 안녕, 드라큘라 하재연 당신이 나를 당신의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면 나는 아이의 얼굴이거나 노인의 얼굴로 영원히 당신의 곁에 남아 사랑을 다할 수 있다. 세계의 방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햇살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살아있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은 당신의 .. !시 2016.11.23
지금은 우리가 / 박준 지금은 우리가 박준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중에서 !시 2016.11.23
사랑의 언어 / 김현 1)사랑의 언어 김현 남자가 문을 열고 떠났다 가지 마 남자가 손을 뻗었으나 가슴이 열렸다 새가 날아갔다 남자는 따라갔다 새는 시계탑 위에 앉아 떨어지는 것을 보며 지저귀고 눈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은 눈으로 그리고 입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입으로 들어라 가슴이 열린 남자는 쭈그.. !시 2016.11.12
아무 생각 없이 늦은 밤, 조성모의 '잃어버린 우산'을 듣는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고 싶을 때 생각나는 노래다. 그러니 지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고 싶'은 것이다. 시계의 초침 소리만 들리는 밤, 깜박이는 커서, 그리고 그 커서를 따라 한 글자씩 새기듯이, 아니 흘리듯이 뜻도 없이 쓴다... 바람마음 2016.11.12
사소한 햇빛 /송종규 2016. 11.01 나의 베란다 사소한 햇빛 송종규 내 몸은 긴 이야기 많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몸속을 흐르고 있음을 나는 안다 일 년 내내 발바닥이 시린 것도, 왼손으로 덥석 악수를 청했을 때 약간의 자괴감 같은 것도 이런,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누군가 내 삶에 개입했고 누군가 끝없이 .. !시 2016.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