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왕 / 김상혁 종이로 만든 기쁜 장미 ^^ 기쁨의 왕 김상혁 만일 기쁨을 말한다면 그건 사람의 기쁨이겠지. 기쁜 사람이 매일 찾아가 두 팔로 나무를 안아주었다. 나무는 자라 숲이 되고, 숲은 끝없이 퍼져 해안까지 닿았다, 그렇대도 그것이 나무의 기쁨, 숲의, 바다의 기쁨은 아닌 것이다 먹는 기쁨, 보.. !시 2017.02.18
우리의 죄는 야옹 / 길상호 전철 플랫폼에서 우리의 죄는 야옹 길상호 아침 창유리가 흐려지고 빗방울의 방이 하나둘 지어졌네 나는 세 마리 고양이를 데리고 오늘의 울음을 연습하다가 가장 착해 보이는 빗방울 속으로 들어가 앉았네 남몰래 길러온 발톱을 꺼내놓고서 부드럽게 닿을 때까지 물벽에 각자의 기도문.. !시 2017.02.14
2017년 2월 1일 부평공원에서 막내와 모처럼 공원에 갔다. 2월의 첫날,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출발^^ 열매받침일까? 멀리서 보면 목련이 핀 모습 같다. 이름을 몰라서 답답한.... 미루나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늘 가지를 보고 혹 백양나무나 은사시나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씨앗이 떨어지고 빈 껍질만 .. 내마음의풍경 2017.02.03
겨울강 / 박남철 겨울강 박남철 겨울강에 나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돌 하나를 던져본다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쩡, 쩡, 돌을 튕기며, 쩡, 지가 무슨 바닥이나 된다는 듯이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언젠가 녹아 흐를 것들이, 쩡 봄이 오면 녹아 흐를 것들이, 쩡, 쩡 아예 되기도 전에 다 녹아 .. !시 2017.02.03
늦봄에 내리는 눈 / 신미나 늦봄에 내리는 눈 신미나 거울에 손바닥을 대면 짧은 김이 서린다 손바닥을 떼면 혼처럼 사라진다 젓가락을 세로로 꽂으면 불행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것은 향을 꽂는 모습과 비슷하다 전보다 거울이 어두워졌다 눈 밑의 점이 진해 보인다 당신이 말하길 귀신들은 향냄새를 좋아한다고 .. !시 2017.02.01
大雪 지금은 새벽 5시 14분, 밤새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는 잠을 자고 일어났다. 폭설이라는 소식에 아직 깜깜하여 보이지 않는 밖을 창문 열고 내다 보니 세상이 하얗다. 올해 처음으로 눈이 내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동안도 몇 차례의 눈은 내렸지만. 아침 일어나 처음 마시는 커.. 바람마음 2017.01.20
기념일 / 이장욱 기념일 이장욱 식도에서 소장까지 기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우리는 꼭꼭 씹어먹는다. 위를 기념하고 쓸개를 기념하고 무엇이든 녹이는 침을 기념하고 오늘은 누군가의 기일이며 전쟁이 있었던 날. 창밖의 구름은 지난해의 농담을 닮았고 농담은 피가 부족하다. 어제까지 어머니였던.. !시 2017.01.20
아무 일 없이 / 조정인 아무 일 없이 조정인 이 풍성한 외로움의 배후는 당신이라는 저편이다 나무가 분홍 운무의 시간을 벗어 공중에 걸어두었다 고요한 내재율이 못물처럼 흔들린다 텅 빈 공중에 유목의 세필(細筆)이 스친다 바람이 꽃나무를 건너는 동안 높고 낮게 드러나는 파고를 올려다본다 발밑 한 길 .. !시 2017.01.17
목판화 / 진창윤 목판화 진창윤 목판 위에 칼을 대면 마을에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목 안쪽으로 흘러들어 고이는 풍경들은 늘 배경이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여자의 문 따는 소리를 들으려면 손목에 힘을 빼야한다 칼은 골목을 따라 가로등을 세우고 지붕 위에 기와를 덮고 용마루 위의 길고양이 .. !시 2017.01.03
무화과 숲 / 황인찬 무화과 숲 황인찬 쌀을 씻다가 창 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을 꿈이었다 !시 2016.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