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를 보내며 박노해 11월의 저물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 개 막걸리와 고추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끓듯 큰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 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 *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소개된 시다. 사물과 감정을 나눈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나누는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겠지만 정을 계속 주다보면 어느순간부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