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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 김영하 (복복서가, 2022)

이 책의 1판 1쇄가 2022년 5월 2일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1판 5쇄 2022년 6월 10일. 이 정도면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안쓸신잡이나, 팟캐스트, 그리고 대중 매체를 통한 강연 등등이 소설가 김영하를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리는 데 일조를 한 듯 싶다. 개인적으로 나역시 좋아하는 소설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이 없다. 김영하를 소설을 통해서보다는 다른 매체를 통해 그의 면면을 좋아하게 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의 박학다식함과 그에 비해 겸손해보이는 태도, 편안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힘이 있는 말.... 그래서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이제부터 이 책을 필두로 소설가 김영하를 알아가려고 한다.

2022.06.14

어항골목 / 안현미

고장난 가로등처럼 서 있는 사내를 지나 방금 도착한 여자의 어깨에선 사막을 건너온 바람의 냄새가 났고 이 도시의 가장 후미진 모퉁이에선 골목이 부레처럼 부불어올라 고장난 가로등처럼 서 있던 사내의 구두가 담기고 있다 첨범, 여자는 의족을 벗고 부풀어오른 골목으로 물소리를 내며 다이빙한다 꼬리지느러미를 활 발히 흔들며 언어 이전으로 헤엄쳐간다 주름잡는다 여자의 주름에선 언어 이전에 있는 어떤 어항에서 꺼낸 것 같은 언어가 버블버블 퐁퐁 투명한 골목을 유영한다 인간의 남자를 사랑하여 아낌없이 버렸던 모든 것들 이 버블버블 다시 태어난다 그사이 젖은 구두를 벗은 사내도 산소통을 부레처럼 달고 언어를 떠나온다 어항 골목 고장난 가로등엔 물고기 달이 커진다 퐁퐁 골목밖으로 여자의 의족이 폭죽처럼 떠오른다 ―안현미..

!시 2022.04.21

아침 산책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집 근처를 산책했다. 이렇게 환한 아침에 산책한다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어서 그동안 휴일 두 세번이 다였던 것 같다. 아파트 주변에 심어진 수종들을 보면서 나무 이름, 꽃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며 걸었다. 지금은 철쭉이 피어나고 있었고 영산홍은 봉오리가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 죽단화도 드문드문 심어져 있었고 하얀 조팝나무 꽃들도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나는 지금이 좋다. 참 좋다. 참...

바람마음 2022.04.21

요즘 나는...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정리를 깨끗이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집안을 늘 정돈한다. 그것은 휴일의 시간이 너무 귀하기 때문인데 평상시에 집안을 돌보지 않으면 모처럼의 휴일을 집안 일을 하느라 허무하게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충실한 삶, 내 주변을 잘 정돈하며 사는 삶, 그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침 출근할 때면 가로수 은행나뭇잎이 점점 초록으로 번져간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봄은 매년 찾아오지만 매년 새봄인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것이 천성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에겐 성숙한 인간 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정서적인 독립이 전제가 되어야만 관계가 편하다는 것을. 이제는 외로움을 한적한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한적하고..

바람마음 2022.04.21

좋은 관계, 나쁜 관계

나쁜 사람과의 깊은 관계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조정하며 그저 그 관계는 종속적일 뿐이다. 그리고 자기를 통해서만 인생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바람직한 관계는 상대가 연장자이거나 권위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평적측면이 존재해야 한다. * 김경일 교수가 유튜브 동영상에서 한 말이다. 나는 예전부터 가장 좋은 관계, 그러니까 내가 추구하는 관계는 호칭 앞에 '친구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친구같은 아빠, 친구같은 남편, 친구같은 언니, 친구같은 선배, 친구같은 상사, 친구같은 선생님.... 친구라는 것은 수평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수평적 관계는 인격체로서의 상호존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것이 결코 당연할 수 없는 관계, 저 동영상을 보면서 내 생각이 틀리지 ..

바람마음 2022.04.20

용서에 대하여

용서라는 말, 예전에는 누구를 용서한다는 말 자체가 실례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용서의 전제에는 자신이 과연 용서를 해줄 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고 그렇다고 끄덕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용서는 어떤 한 부분에서의 일이라는 것을. 전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어떤 사건, 어떤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 상처를 입힐 수도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관계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어난 책임이 100대 0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잘못을 한 사람, 더 많은 원인이 된 사람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라는 것을 강박증처럼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미워하는 것은..

바람마음 2022.04.15

장미

미니 장미 세 화분이 가게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기를 붙잡는다. 이 길목에서 꽃이 많아 꽃집으로 아는 사람들도 꽤나 많지만, 커피숍은 멀리서봐도 한눈에 커피숍이라는 것을 알려야 하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내가 이곳에서 잘 한 일이 있다면 출근길 퇴근길, 혹은 무료하게 걸어가는 이에게 잠시라도 꽃을 보게 해주는 일이라고 나 스스로 생각한다. 아침 지나가는 어떤 아주머니가 내게 말한다. 이곳은 힐링장소에요, 라고. 또 어떤 아주머니는 자기는 일부러 이 앞을 지나간다고도 하셨다. 그런 말을 듣게 되면 하루가 이뻐지는 것 같다. 넝쿨장미를 재작년 겨울무렵 심었는다. 노지에서는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흔한 빨간 넝쿨장미를 심었는데 올해는 뿌리는 내린 것만 같다. 오늘 긴 가지를 철망위로 자리를 잡아주었다. ..

내작은뜰 2022.04.13

벚꽃길

어제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10시쯤 집에서 가까운 벚꽃길을 걸었다. 가로수가 거의 은행나무이지만 300 미터 정도가벚꽃길이었다. 그 흔한 벚꽃을 못보나보다 했는데 벚꽃만발한 그 아래를 혼자 걷는 밤길이 너무도 행복했다. 그렇지. 옆에 없으면 찾아가면 되는 거였지.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만 했지 정작 신발을 신고 나설 생각을 못했다. 오늘밤도 난 저 길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벚꽃이 다 지고 초록잎이 날 때까지 밤마다 난 저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다시 살아있다는 이 느낌... 심장이 뛰는 곳이 자꾸만 간지럽다.

바람마음 2022.04.12

일상적 노동을 무시하고는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 노동을 무시하고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 톨스토이 * 책을 읽다가 오늘 내 마음에 들어온 문장이다. 일을 시작한지 2년 6개월이 지났다. 아침 8시 30분에 나와 다시 집에 돌아가면 밤 9시 30분. 그동안 나의 생활 패턴은 변함없이 이렇게 이어져왔다. 얼마전 경복궁을 가족과 함께 다녀온 적이있다. 모처럼의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인데 그날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숨차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는 것이다. 걷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동안 걷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기대에 가득찼던 나들이가 힘에 겨운 나들이가 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몇시간을 누워있어야만 했다. 문득 그동안의 내 생활을 돌아보았다. 가게 안에서 움직이기는 ..

!글 2022.04.10